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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던 안재호(65세) 씨는 33년 전,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경상남도 함양의 산골 마을로 내려왔다.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하루 12시간씩 불 앞에 앉아야 얻을 수 있는 귀한 옻 진액 ‘화칠’을 만들기 위해서다.

하루 종일 땀과 진을 쏟아야 겨우 400g 남짓 얻을 수 있는 화칠은 그만큼 얻기 어려운 재료이지만, 재호 씨는 묵묵히 전통을 이어간다. 그의 곁에는 아내 허금자 씨가 있다.

 

사노라면 함양 화칠 장인 안재호 씨 옻진액과 슈퍼 민박집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함양 화칠장인 안재호 슈퍼 민박

 

 

시어른들의 조수가 모두 떠난 뒤 남편 옆에서 배우며 손발을 보태기 시작한 지 이제 2년, 아직 초보인 금자 씨는 남편의 잔소리를 달고 사는 날이 많지만, 잔소리가 심하게 느껴질 때면 잠시 자리를 피했다가 곧 아무 일 없던 듯 다시 남편 옆을 지킨다.

화칠 작업 중 재호 씨는 엄격하지만, 일을 내려놓으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남편으로 변하며, 아내가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작은 심부름조차 마다하지 않고 척척 해낸다.

 

아내의 행복은 그의 행복이고, 아내가 짜증을 내면 자신도 괴로워한다. 어느 날 순천에서 장모님의 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감을 따다 계단에서 굴러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다.

 

 

 

 

함양 옻진액 민박집

 

 

화칠 작업으로 바로 달려갈 수 없는 상황에 금자 씨는 마음을 졸였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재호 씨의 마음도 함께 타들어 갔다.

젊은 시절 자신의 어머니가 병환으로 고생할 때도 헌신적으로 간호했던 아내를 떠올리며, 재호 씨는 아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다짐을 새삼 되새겼고, 올겨울 장모님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욱 부지런히 불 앞에 앉는다.

며칠 뒤 부부가 장모님을 병문안하러 갔을 때 장모님의 생긋 웃는 얼굴에 안도했지만, 늘어난 병원비 걱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보험도 들어 있지 않아 정확한 금액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재호 씨는 아내를 위로하며 “돈보다 장모님의 건강이 먼저”라며 다시 화칠에 매달릴 것을 다짐한다.

 

금자 씨는 남편의 고생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직접 화칠 작업을 배우기로 마음먹고, 바지 두 벌을 겹쳐 입고 장갑까지 단단히 챙긴 채 작업장으로 향한다.

남편은 걱정 어린 마음으로 하나씩 차근차근 알려주지만, 초보인 아내의 실수가 반복되면서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재호 씨는 점점 예민해지고 결국 큰소리를 내고 만다.

순간 얼어붙은 작업장, 속상한 금자 씨는 서둘러 자리를 떠난다. 평소 순둥이 남편인 재호 씨는 이번 위기를 어떻게 풀어낼까.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와 사랑이 이번 갈등을 넘어서는 힘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조마조마하게 만든다.